존경하는 선생님께

  새 봄 보다 한 발 앞서 새 학년이 시작되었네요.

개학과 함께 돌아온 아이들의 웃음이 있어 교실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방학동안 충전의 시간을 가지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방과후 학교나 새 학년 준비, 방학 중에도 그치지 않는 공문과 행정업무로 바쁘셨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또 숨 가쁜 나날이 시작되었군요. 하지만 여전히 3월은 선생님들께 가장 설레는 달이기도 하겠지요?

  교원업무 정상화는 계속됩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며 모든 것에 앞서 한 가지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을 지치게 만드는 지시와 통제, 잡다한 행정업무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덜어내겠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수업과 생활지도가 아무리 격무라 해도 그 때문에 힘들다고 말씀하시거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만 보면 선생님들께서는 힘이 불끈 솟는다는 말씀에 항상 감명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교육청 조직을 축소하고 상당한 정책사업을 통폐합한 것도 행정업무를 줄이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울러 행정업무 전담부서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이 본질적인 교육활동에만 전념하게 되면 학교가 역동적으로 깨어나고, 우리의 공교육이 살아날 것이라 믿습니다. 2014년에 교원업무 정상화 1단계 작업을 진행했고, 이어서 올해 2단계 작업을 차질 없이 진전시키겠습니다.

  ‘질문이 있는 교실’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살려낸 시간에 선생님들은 더 좋은 수업과 교육활동을 위한 연구를 하시겠지요. 서울교육의 첫 번째 지표인 ‘질문이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선생님들께 연구할 시간과 아이들과 만날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산사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수업혁신을 지원하기 위해서 교사의 ‘전문적 학습동아리’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수업 컨설팅과 수업코칭, 교사 연수도 내실 있게 운영하려고 합니다. 선생님들의 힘이야 말로 ‘질문이 있는 신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는 열쇠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저는 올해, 학생자치를 활성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학생들을 훈육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가진 ‘교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하자는 시도입니다.

자기결정 능력이 높은 아이일수록 삶의 태도가 긍적적이고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은 사랑과 염려가 앞선 나머지 아이들의 결정을 기다려주기 보다 선생님들께서 먼저 결정해 버리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동안 우리교육에서는 자기결정 능력을 키우는 일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아이들이 ‘결정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결정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재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야말로 아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길러주기에 가장 적합한 현장입니다. 학교는 충분한 교육시간, 교사라는 전문가의 도움, 참여와 협력을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다, 아이들의 불균질성과 역량 차이를 보정하고 줄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학급자치활동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육청에서도 ‘학생 참여 예산제’를 도입해서 예산집행까지 해 볼 수 있는 실질적인 자치를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치활동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세대인 선생님들께서 학생자치를 잘 지도할 수 있도록 연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 학교나 좋은 환경을 갖추도록 하고 싶습니다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으며, 그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조사결과에 심각한 위기를 느낍니다.

학교별로 지역과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의 정서와 학습의욕에 차이가 매우 크지요. 선생님들께서는 학교를 이동하실 때 마다 이런 차이를 실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고르게 교육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얼마나 애쓰고 계시는지 감동으로 전해 듣고 있습니다.

가정과 지역의 교육격차가 학교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지자체와 협력해서 교육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게 됩니다. 가급적이면 선생님들의 일이 늘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지만, 아이들의 환경과 마음 구석구석까지 가장 잘 알고 계시는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꼭 필요한 아이에게 최선의 방법으로 교육지원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권 법률지원단’이 선생님의 어려움을 도와드립니다

또 그동안 선언에서 머물렀거나 학생의 인권과 대립되는 듯이 비춰졌던 ‘교권’을 교육적인 관점에서 더욱 실질적으로 세워 나가겠습니다.

본청에만 있었던 ‘교권보호지원센터’를 모든 지원청까지 설치해서 신속하게 교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고,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교권 법률지원단’에서는 선생님들께 더욱 전문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게 했습니다. 통제와 행정업무로부터 벗어나서 본질적인 교육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것, 학교 내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 역시 교권이 바로 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관리자와 선생님, 선생님과 학생이 존중과 협력의 관계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을 당부 드립니다.

  선생님들과 만나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교육정책이 바뀌어도 현장에서는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사실 그 때마다 좀 더 강하게 추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위로부터 강제했던 것은 학교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가야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선생님들께 있고, 저는 그것을 돕고 걸림돌을 치우는 등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 학년부터는 더 열심히 학교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가서 교육의 최고 전문가인 선생님들의 비판과 조언을 빠짐없이 듣고 정책에 반영하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교육청 벽에 고은 선생님의 시를 걸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새 학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2015년 3월 2일

서울특별시교육감 조 희 연 드림